[밑줄 긋는 남자 #1] 도쿄타워 _ 에쿠니 가오리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발췌 _ 커피맨 ( www.icoffeeman.co.kr )



에쿠니 가오리 <도쿄타워>

<냉정과 열정 사이> 때문에 <도쿄타워>을 처음  읽게 됐다.

그런데 20살 난 친구 아들과 바람난 40살의 유부녀의 사랑 얘기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싯구처럼 아름다운 소설 속 문장들. 섬세한 심리묘사가 읽을 수록 나의 취향을 사로잡는다. 

이런 불륜이라면 나도 하고 싶다, 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연애소설이다.

지금까지 5번 읽었고 앞으로도 사랑이 고프면 읽고 또 읽을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느껴보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은 비에 젖은 도쿄 타워이다.  p.9  

오후 4시, 이제 곧 시후미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나는 그 사람의 전화를, 이렇듯 기다리게 되었을까.  p.9  

음악적으로 생긴 아드님이네.  p.11

머리가 좋다는 것은 다시 말해, 행동능력이다.  p.15

오른편에 있는 그녀의 존재를 온몸으로 음미하려 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그녀를.  p.18

연상의 여자 쪽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한다.  p.34

"사람과 사람은 말야, 공기로 인해 서로 끌리는 것 같아. 성격이나 외모에 앞서 우선 공기가 있어. 그 사람이 주변에 발하는 공기. 나는, 그런 동물적인 것을 믿어."(시후미) 

시후미는 동물적이다. 토오루는 생각한다. 자신에게 없는 강인함과 활력을 느끼면, 거의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p.36

"네가 이야기하면 느낌이 참 좋아. 아주 좋은 언어를 사용하니까. 좋은 언어? 그래, 솔직한 언어. 진실된 말."  p.42

"손 잡아도 돼? 나, 손 잡아주지 않는 남자는 싫어."  p.43

제안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시후미는 언제나 그렇다. 뭐든 똑부러지게 결정한다.  p.44

유부녀를 유혹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사람들은 즐거움에 굶주려 있는 것이다. 은밀한 즐거움에,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  p.47

키미코는 신기할 정도로 낭창낭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p.48

쿠우지에게는, 유리는 유리가 아니면 안되었다. 다른 귀여운 여자는 안되고, 유리는 유리라서 좋은 것이다. 다만, 섹스가 되면 달랐다. 유리와의 그것은, 다른 귀여운 여자와의 그것과 똑같은 느낌이 든다. 그 점이 키미코와 다르다. 키미코와의 그것은, 키미코와 자신 사이에서만 성립한다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p.49

언제부터일까. 언제부터 코우지와 전화를 하고 있을 때조차 시후미를 생각하게 됐을까?  p.52

책은 시후미와 많지 않은 공통점 중 한 가지이다.  p.53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져드는 거야." 토오루는 그것을, 시후미에게 배웠다. "일단 빠져들고 나면, 다시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도.  p.54

토오루는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자신을 비로소 발견했고, 그러한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은 '시후미로 인하여 존재하고 있다.  p.58~59

토오루는 음악을 듣는 내내, 옆에 앉은 시후미의 존재를 녹아 내릴 듯이 뜨겁게 의식했다.  p.59

곡명조차 모르면서, 방금 전에 들은 음 하나하나가 맑디맑게, 풍요로운 덩어리째 토오루의 몸 안에서 넘실거렸다. 무척 아름답게. 시후미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그랬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다. 토오루는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발끝까지 이탈리아 요리로 가득 차 버린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순도의 문제였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는다. 토오루의 온몸은 음악으로 가득 차고, 다른 일은 전혀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연주, 참 좋았어" 시후미가 말하고, 그 순간 토오루는 깨닫는다. 이것은 피아니스트의 힘이 아니라 시후미의 힘이다, 라고. 자신은 시후미가 하는 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p.59

"아직 피아노 여운, 남아 있어? 그럼 음악 트는 건 그만두자."  p.61

"하지만, 숨기는 것도 이상하잖아? 숨기면, 괜히 나쁜 짓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아?" 그 말이 맞았다. 그렇지만 시후미가 말을 덧붙이면 덧붙일 수록, 토오루는 바라던 바가 아님을 느꼈다.  p.63

도쿄타워가 보인다. 언제나. 바로 정면에. 밤의 도쿄타워는 온화한 불빛으로 빙 둘러져, 그 자체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곧은 몸으로, 밤하늘을 향해 '우뚝' 서서.  p.63

시후미는 사진을 좋아한다. 그림보다 '현실적'이라서 좋아한다고 했다.  p.64

... 사진작가의 연령에 심한 질투를 느꼈다. 이 남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 그리고 이미 영원히 알 수 없는 - 시후미를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화가 났다.  p.65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내세울 만큼 행복하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 행복하고 안하고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시후미) 행복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때의 토오루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p.70

"해피 뉴 이어!" 시후미는 토오루와 처음으로 잔을 부딪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별안간 행복에 휩싸이고, 토오루는 샴페인을 마시는 것도 잊었다. 두 사람의 비밀이 하나 더 늘었다. 사소한, 그러나 감미로운.  p.71

"키미코는 악마다." 코우지는 자신을 타고 앉은 여자의, 가늘면서도 놀랄 만큼 부드럽고 매끄러운 허리를 보며 생각했다.  p.72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줄 아는 게 나아. 내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식으로. 간단한 일이었어. 금세 멍청해졌거든. 하긴 원래 멍청했는지도 모르지."  p.74

연상의 여자는 천진난만하다. ...... 여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천진난만해진다. ..... 여자가 지니는 성질 가운데 천진함 이상으로 좋은 것이 있을까.  p.75

할머니와 여자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는 코우지에게, 토오루는 묘하게 감탄한다.  p.83

사랑을 하면 강아지도 시인이 된다.  p.84

한낮의 도쿄 타워는 수수하고 온화한 아저씨 같다.  p.88

다른 여러 사람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친해지지도 고립되지도 않으면서 존재하는 기술을 습득해 버렸다.  p.89

한동안 시후미를 만나지 못했다. 시후미는 아무렇지 않을 테지. 토오루는 생각한다. 시후미한테는 일이 있고, 친구도 많은지 사교적으로도 바쁘다. 게다가 가정. 마흔 살 여자의 일상 속에서, 친구의 아들을 못 만나는 것쯤 무슨 대수이겠는가.  p.89

서른살의 시후미, 스무 살의 시후미, 열다섯 살의 시후미, 독신의, 그리고 소녀 적의. 토오루는 그것이 너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어렵고 부당한, 한없이 쓸쓸한 일이라고.

시간.

정말 분하게도, 지난 시간만큼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p.90

토오루는 또 자신의 온몸이 음악으로 가득 채워질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 피아니스트가 천재라서가 아니라, 시후미와 함께 듣기 때문이다. 시후미가 '들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p.96 

가게 안은 따뜻하고 시끌시끌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화 하나하나가 들리는 시끄러움이 아니라, 가게 전체가 하나의 소음을 자아내고 있는 듯한, 느긋함과 평온함이었다.  p.101

"이럴 때 나이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에?" "이런식으로 예정이 틀어지는 것을, 젊었을 때는 좀 더 즐겼던 것 같아."  p.102

"너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아."  p.103

그레이엄 그린의 <정사의 끝>은, 시후미가 '토오루 나이 정도'에 읽은 책으로, 읽기 전과 비교하여 읽은 후에 '모든 것이 달라져 버린' 소설인 듯 싶다. 토오루는 그저께 그 책을 다 읽었다.  p.110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p.110

토오루는 시후미를 만나고 싶었다. 도시의 눈은 싫어. 결코 밉살스럽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고, 그런 말을 한 시후미를.  p.111

토오루는 요 2주간이 자신과 시후미의 거리라고 생각했다. 현실이라고.  p.115

기다린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p.115

눈앞에 시후미가 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p.119

"적어도 나에 대해 네가 뭔가를 해야 된다든지, 해서는 안 된다든지, 그런 것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p.122

시후미는 뭔가를 '가르쳐' 주거나 '리드'해 주었던 적은 없다. 한 번도.  p.122

섹스할 때, 시후미는 '흐트러지거나' '소리를 높인' 적이 없다. 언제나 무척 유연하게, 토오루를 받아들여 주었다. 시후미의 몸은 희고 작다. 그리고 모양 좋은 눈으로 토오루를 지그시 바라본다. 그럴 때면 토오루는 마치 자신이 시험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곤혹스럽고, 곤혹스러운 것이 싫어서 무턱대고 움직여 버릴 때도 있다.  p.123

시후미와 있을 때면, 그 밖의 세계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p.123

"그거 알아? '하지만' 난 너의 미래를 질투하고 있어."  p.124

"믿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난 네가 너무 좋아." 아주 살짝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나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아."  p.125

토오루에게 있어서 세계는 온통 시후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p.127

총명하다. 꾸밈없고. 유리와 있으면, 코우지는 매사가 단순하게 느껴진다.  p.133

토오루에게는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시후미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비교할 수 없다. ..... 시후미 이외는 무엇도 토오루를 행복하게 할 수 없었다.  p.134

토오루에게는 어딘가 위험한 구석이 있다고, 코우지는 생각한다. 저렇게 어른스러운 녀석일수록 언제까지나 어린애라고.  p.137

"다음은 As Tears Go By 틀어줘요." 카운터 안의, 선이 가는 마스터에게 즐거운 듯 신청하기도 한다. "좀 더 일찍 태어나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잔을 흔들어, 와인에 잔물결을 일으키면서 시후미가 말했다. "나한테 이 곡이 아주 특별했던 시절, 토오루도 함께 이것을 들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 "가끔 말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p.137

이 사람이 만약 떠나버린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38

"결혼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함께 식사할 상대가 있다는 거야."  p.139

녹아 내릴 듯이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p.141

"갑자기 보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아? 오늘 만나는 줄 알면서도, 오늘이 아닌 어제 보고 싶었어."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남자라니, 형편없어."  p.144

"감정이란 게 이치대로는 안 되는 거잖아?"  p.145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p.147

압도적인 슬픔.  p.148

"결국, 코우지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그런 말을 한 키미코. 정작 자신의 부자유는 문제삼지 않고, 마치 부당한 꼴을 당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코우지를 질책했다. "보고 싶었어. 갑자기 보고 싶어질 때 있지 않아?"  p.149

"가령(새해를 맞이하여 나이를 한 살 더 먹음_역주)과 중력이랑 매일 싸우고 있어."  p.152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 머리 한구석으로는 늘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p.161

토오루는 시후미와 함께가 아니면, 무슨 말을 주고받든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미에 대해서만, 자신의 말이 제대로 기능한다.  p.164

그 두 사람은 모두 경계심을 없애 주는 인간이다. 그런 생각에 코우지는 어쩐지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믿을 수 있는 인간은 적지만,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다.  p.168

줄곧 보고 싶었다. 시후미만을 생각했다. 시후미가 읽은 책을 읽고, 시후미가 듣던 음악을 들었다.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정신이 돌아버린 건지도 모른다고.

시후미는 시치미를 떼고 앉아 있다. 토오루를 고통 속에 내버려 둔 일 따위 없었다는 듯이,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나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우아하게 술을 홀짝인다.  p.170

"멋져. 나, 골프 치는 남자 너무 싫어."  p.170

실망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토오루는 알았다고 대답한다. 그럭저럭 미소 비슷한 것을 지었다.  p.171 

요즘 젊은이인데도 갖고 있지 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이 여자는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할까.  p.173

평소의 키미코는 아름답다. 그러나 화났을 때의 키미코는, 코우지에게, 기분 안 좋을 때의 어머니를 연상시킨다. 히스테릭한 아줌마의 얼굴이다.  p.175

"어떻게 그래.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어?"  p.175

실제, 그날의 일은 무엇이든, 토오루한테는 너무 행복해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그래서 더 아깝게 느껴졌다. 한 가지 한 가지를 좀 더 확실히 맛보고 싶은데, 차창을 흐르는 경치처럼 붙잡을 길도 없고, 어쩔 도리도 없이 행복이 흘러가 버리는 것만 같았다.  p.176

평소에는 시후미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항상 느껴왔다. 혼잡한 가운데 묘하게 들떠있는 시후미를 보자,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다.  p.177

한낮의 햇살 속에서 보는 시후미는, 여느 때보다 아주 약간만 연상으로 보였다.  p.182

"여기서 함께 책을 읽는 건 멋진 일이야. 달이 뜨면 좋을 텐데."  p.183

"그럼, 침대부터 시험해 보고 나서 나가자."  p.183

시후미에겐 배 향기가 난다고, 토오루는 생각했다.  p.183

"아무 얘기나 해봐." ..... 시후미가 끼여드는 일 없이 잠자코 듣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시간도 장소도 알 수 없게 되어 가는 듯한. 가게 안의 공기가 바깥과는 전혀 다른 밀도에서 흐르고 있는 듯한..... 이 세상에 자신과 시후미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있다. 토오루는 그렇게 생각하고, 거의 현기증이 날만큼 행복을 느꼈다.  p.185

"고등학생의 나도, 대학생의 나도, 언제나 토오루의 눈앞에 있어."  p.185

토오루는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서 밀려나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p.188

"보고 싶었어." 시후미는 토오루의 얼굴이 아니라 가슴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라기보다 내 안의 누군가 다른 여자가, 널 무척 보고 싶어했어." "다른 여자?" "응, 그게 말이지, 완고하고 야성적인 여자야."  p.189

키스도 섹스도, 조용하고 자연스러웠다. 특별히 격렬하지도, 특별히 길지도 않았다.  p.190

같은 자기 집인데도 키미코가 있으면 어쩐지 불손한, 비위생적인 러브호텔처럼 느껴졌다.  p.201

"서른다섯 먹은 여자의 욕망을, 코우지는 절대 알지 못해."  p.207

전화를 건다는 생각만으로도 동요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 토오루는 망설이고, 자신이 한심스러워 한숨을 쉰다. 전화부스의 유리에 붙은 물방울은, 왜 그런지 언제나 지독하게 잘다. 두려운 것은 부재가 아니라 응대였다. 놀란 듯한, 또는 당혹스러운 듯한 시후미의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서먹서먹하게, 혹은 분주하게 응대 받는 것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발신음이 들린 순간, 토오루는 거의 부재중이길 기원했다. 부재중이라면, 그저 조금 실망하는 것으로 끝난다.  p.214

"누가 누구를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어."  p.217

"슬프게 만들지 말아."

"미안해요."

"난폭하네."

"토오루 꿈만 꿔."

토오루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을 할 때도, 어느새 너를 생각 해."

"보고 싶었어."  p.219

오늘밤 간신히 되찾은 시후미를, 남편 곁으로 돌려보낼 마음은 없었다.  p.223

토오루는 시후미를 그런 곳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것'은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세간에 쓸어 담을 흔하다는 불륜관계의 남녀와 '이것'은 전혀 닮지 않았다.  p.224

토오루는 시후미를 안전한 장소에서 끌어내린 것에 대한 죄책감과 난폭한 달성감을 동시에 느꼈다.  p.224

시후미의 가슴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쪘다. 잘 관리된 피부는 희고 매끄러우며, 달콤한 냄새가 난다.  p.227

"밥 먹느라 지워진 루즈는 고쳐 바르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그런데 이렇게 하다 지워진 루즈는 고쳐 바르려고 해도 좀처럼 안 돼."  p.228

"같이 살아요."

"좀 봐줘."

"미안해요."

정신이 들고 보니, 토오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말은, 언제나 토오루를 배신한다.  p.229

어젯밤의 비가 거짓이었다는 듯이 쾌청하다. 온도가 너무 높아서 공기가 흔들려 보인다.  p.231

"그런 상황에 사과라니, 교활해. 돌아갈 수 없게 돼 버렸잖아."  p.234

키스 도중, 시후미는 몇 번씩이나 사랑한다고 말했다. 말도 안되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 믿어지지 않는다고.  p.235

"같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아 있어."  p.235

새벽은 도심의 뒷골목에조차 청결한 정적을 가져다준다.  p.236

그 모습은 평소의 시후미였다. 옷은 구겨지고 화장도 지워진 그대로였지만, 그 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후미였다. 아름답고, 침착하기 그지없는, 그리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p.237

의지나 노력은 발휘할 방향이 정해지고 나서 발휘해야 한다.  p.238

능력만 있으면 인간은 자유롭다.  p.238

자신은 키미코를 잃고 싶지 않다. 설령 언젠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 해도, 키미코와의 육체관계는 잃고 싶지 않다고.  p.241

유리에게는 청결한 터프함이 있다.  p.244

토오루는 시후미를 빼앗고 싶어졌다. 빼앗겠다고 결심한다.  p.246

시후미의 등은 작고 아름답다.  p.246

"여행지에서 누군가가 그리워서, 아, 정말이지, 정말이지 하면서, 내가 왜 이런 곳에 있어야 하지, 라고 생각하는 거 처음이었어."  p.247

토오루는 행복한 기분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시후미의 얼굴은 보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잘 지낼 리 없는 줄 알면서."  p.247

"말했지?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절대 같은 게 아니라고."

"누구와 살든, 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과 살아. 그렇게 마음먹었어."  p.248-249

키미코의 대담함과 솔직함은, 분명 사랑해야 할 무언가였다. 탄탄한 몸과 힘 센 팔도.  p.254

정말 어느 때인가, 자신이 키미코와 헤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p.255

그러나, 코우지로서는 자신이 앞으로 쭉 키미코와 사귄다거나, 남편과 이혼시키고 결혼하겠다, 라는 식의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p.256 

여름철의 저녁은 대중 목욕탕 같은 냄새가 난다.  p.257

"그럼, 같이 밥먹어요."

"지금?"

"밤에는 집에 있고 싶어."

"전에도 말했지만, 나, 제법 괜찮은 주부야."

특별히, 키미코와 식사를 꼭 같이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때 자신이 대체 왜 그렇게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키미코에게 화가 났다.  p.262-263

토오루는 시후미 이외의 것은 어떻든 상관없었다. 시후미가 전부였다.  p.267

언제나 아름답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시후미의, 불현듯 비치는 안쓰러운 표정. 동요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똑부러지게 말할 때의 순간적인 망설임.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토오루는 빙그레 미소 짓는다.

그러면 됐지 않은가. 토오루는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p.268

시후미와 함께 있을 때면, 시간은 꿀처럼 달콤하고 느긋하게 흘러간다.  p.280

"함께 생활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는 조건,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

시후미를 잃을 것이냐, 둘 중 하나였으므로.  p.280

시후미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미래'가 보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p.287

두 사람 사이에 틀림없이 공범자인 듯한 교감이 통했다. 빛이 날 만큼 진하고 달콤한, 애정과 신뢰와 공감의 순간이었다.  p.287

본질적이 부분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무척 마음 편한 일이었다.  p.290

"키미코와의 섹스는 너무 대담해서 오히려 깜끔해."  p.291

코우지는 키미코의 전화에 잠에서 깨어, 그만 끝내자는 통보를 받았다. 너의 얼굴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p.295

언제였던가, 코우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얼굴빛이 창백했던 키미코를 떠올렸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키미코. 야수야, 라고 말할 때의 키미코. 침대에서 기분 좋은 어린애처럼 즐겁게 웃는 키미코, 자신을 괜찮은 주부라고 주장하는 키미코. 화가 나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온몸이 증오 덩어리가 되어 달려드는 키미코를 떠올렸다.  p.297

그리고 그날부터, 인생은 코우지의 행동능력 밖의 것이 되었다.  p.298

오늘도 빛이 날만큼 행복했다. 시후미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토오루는 새로운 시간을 얻었다고 느낀다. 새로운 시간, 그것은 특별한 방식으로 흐르고, 멋지게 '힘이 솟는' 샘물같은 것이었다. 덕분에 토우로는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시후미와 함께 할 '미래'를 위해, 해야 될 일이 아주 많았다.  p.298

"불문과라면 불어는 할 줄 알아?"

"못해요."

그 순간에는 이미,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할 줄 알게 될 거예요."라고.

간단한 일로 여겨졌다. 시후미가 바란다면, 프랑스인 버금가게 프랑스어를 구사해 보이리라.  p.299 

한 권 한 권 세계를 품고 있어. 바깥 세계에는 없는 것이 도서관에는 가득 차 있지.  p.300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키미코를 잃었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p.301

쿠우지에게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마음을 준다는 행위였다. 묘하게 연상의 여자한테는 마음을 허락해 버린다. 자기 사람이 될 수 없는 여자에게만, 자기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p.302

정말 모든 것이 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p.308

나쁜 녀석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누구를 사랑한 적은 없으니까, 라고.  p.307

귀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귀여움이 자신에게는 전혀 매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귀엽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에 빠지다니, 다들 왜 그렇게 겸허한 것일까.  p.307

키미코는 벌써 7년 넘게 플라멩코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춤을 추고 있으면, 평소 갇혀있던 것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라며.  p.308

키미코의 표정을 스친 것은, 놀라움이 아닌 분노였다. 거의 증오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흔들림 없는 분노였다.  p.309

자신과 시후미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둘이서 공감하고, 주도면밀하게 일을 진행시키려 하고 있다.  p.313

벌써 아주 오랫동안 시후미를 못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과 오늘은 몇만 년이나 떨어져 있다고.  p.316

미련, 그 말에, 코우진는 흠칫 놀란다. 미련이 남은 듯 키미코에게 연락해 버리는 일을, 자신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p.318

키미코는 외톨이다. ... 코우지와 만나고 있는 그 어떤 순간에도, 키미코는 외톨이였다.  p.318

키미코와 자신이 그토록 서로를 갈망했던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외톨이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있든 유리가 있든, 메워지지 않는 고독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 키미코의 온도가 그리웠다. 피부의, 그리고 감정의 온도가.  p.319

"네 방식은 남에게 상처를 줘."  p.326

태어난 순간에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아. 인간이란 모두 완벽하게 상처 없이 태어나지, 굉장하지 않아? 그런데, 그 다음은 말야, 상처뿐이라고 할까, 죽을 때까지도, 상처는 늘 늘어날 뿐이잖아, 누구라도.  p.327

"누구든 상처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도 상처 입는 것에 저항하는 거야, 여자들은."  p.327

시후미의 말에 의하면, 시후미는 '점점 도가 지나쳐서 나도 내가 두려울 정도'란다.  p.328-329

그것은 코우지로서는 견디기 힘든 오해였다. 자신이 비록 호색한이긴 해도 연애에 대해 부도덕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p.331

"코우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됐어."  p.332

여자들이란 어떻게 이토록 간단히 울 수 있을까.  p.333

"전철 안에서 다리 벌리고 앉고, 바빠서 좀처럼 만나지도 못하고, 여자란 귀여워야 좋다는 아저씨 같은 구석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했는데. 깃 넓은 셔츠 같은 걸 입고, 어쩐지 호스트 바에 나가는 사람처럼 하고 다닌다며, 친구들은 이상하다고 말했지만, 난 좋아했어. 왜냐면 코우지, 친절했고·····."  p.333

시후미가 읽은 책은 모두 읽고 싶다.  p.334

"음악적으로 생긴 아드님이네."  p.335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  p.339

사랑 앞에서, 인간은 용감해지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p341 - 저자 후기 중 (2001년 차가운 비가 내리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에쿠니 가오리)

사랑은, 늘,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p.343 - 역자 후기 중 (2005년 가을, 신유희)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